[내소사]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에는 변산반도중에서 우아하고아차한 산봉우리들이 집합되어 있다 깍아지른 듯 하면서도 품안에 부드럽게 감싸주듯 둘러쳐 있는, 가인봉 관음봉에 안기어 내소사는 푹신 하게 안도하며 명당중에서도 가장 으뜸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청정한 산정과, 소박한 애정이 서로 어울리는 변산반도에제 1의 가람으로 우뚝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역시 내소사인 것이다.내소사는 옛날에는 선계사와 실상사, 청림사와 함께 변산의 4대 사찰로 꼽혀 왔는데, 나머지세 절은 없어지고 오직 이 내소사만 홀로 남아있는 것을 보더 라도 내소사의 자리가 아주 훌륭하고 자비가 넘치는 길지였음을 알 것 같다.우리 부안에는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보물이 8점이나 있는데,그 중 4 개가 집중적으로 내소사에 있으니 즉, 고려동종,법화경절본사본, 대웅보전, 영산화괘불탱화 등이다.또, 지방 유형 문화재로는 3 층석탑, 설선당과 요사가 지정되어 있어서 이런 중요성에 미루어, 내소사 일원을 지방 기념물로 지정하고 있다.이처럼 내소사 일원은 부안의 둘도 없는 문화유적의 보고인 셈이다.내소사 경내에 들어서기 전에 얼른 일주문을 맞이하게 되는데 여러절마다 입구에 서 있는 이런 일주문은 기둥이 하나이며 한 줄로 되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이 문에 들어서면서 항상 한마음을 가지고 수도 하라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도 풀이 할 수 있다. 일주문에 들어서면서 진입로 양 옆에 신기롭게 들어서 있는 전나무 숲을 볼 수 있는데, 탐방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연의 품안에 안기어 속정에 시달린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고, 심신을 더욱 북돋아주는 중요한 구실까지를 하고 있는 전나무 숲길인 것이다.모든 내방객들은 이 숲길을 퍽 좋아한다.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
나는 이 숲길만은 시멘트 포장을 하지 말라 고 주문한 적이 있지만 전나무 500여 그루가 도열한 장관을 이룬600m의 터널의 산책길은 내소사만이 간직 하고 있는 특별한 자랑거리 중의 하나인 것이다.
내소사 입구 전나무 숲길 |
눈꽃이 만개한 내소사 |
이 전나무에 대해서는 내소사주지로 7년간이나 근무한적이 있는 소공스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150 년에서 200년은 넉넉히 된다고 하며 동내 촌로들의 말을 빌어도, 왜정 때도 현제의 모습대로 고색항연하고 우람하게 고목의 전나무 숲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변산의 절경과 어우러진 내소사의 이같은 역사와 아름다움은 오래 오래 그대로 남겨두고 싶은 욕심인 것이다.변산은 봉래산, 영주산,능가산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된 이름으로 풀이 할 수 있다.
[능가산(관음봉)]
직소에서 바라본 능가산 : 세봉, 관음봉이라고 한다. |
능가(綾伽) 또는 준거(駿伽)라고도 표기하고 있는데 이 산은 본래 인도의 사자국 (獅子國) 곧, 석란도(錫蘭島)에 있는 산이라고 한다.그런데 이 능가는 능가보의 귀여운 보배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수 없는 거룩하고 엄숙한 산이 즉, 변산이란 것을 그대로 강조 하고 있음을 알 것 같다. 또 내방객들이 내소사에 들어오면서 대개의 경우는 입장권을 사기 위해서 일단 머무를 때 "능가산 내소사"란 한자 현판의 일주문만 쳐다보는데, 그 옆에 온갖 역사를 조감하고 있는 수백년이 됨직한 노거수 홰나무를 보지 못하고 만다. 실은 이 홰나무가 당산나무이며, 할아버지 당산에 해당되는 신목 (神木)이며 부락 사람들은 나무 밑동에 상석을 설치해 놓고, 제사를 모시며 받들고 있고, 내소사 안뜰에 있는 수백년이 넘는 홰나무를 할머니 당산으로 모시고 있다.
[대웅보전]
내소사 대웅보전 |
불상은 인도의 "쿠산왕조" 시대에 이르러, 부상의 표현이 인체의 형상을 빌어, 나타 나기 시작하였던 것이며 동남아 지역과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파되면서 차츰 이상적인 형태의 불상표현이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불심에는 한치 흐트러짐이 없고, 그 마음으로 절 이름을 부른다면 내소사(來蘇寺)는 더 없이아름 답고 귀중한, 우리의 명찰이다. 하고 많은 역사와 세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고풍스럽고, 우아한내소사 대웅보전은 팔작 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으로 그 의장과, 건축 기법이 매우 독창적이며 못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깍아 서로 결합해 지은 건축물로 그 미적 가치가 매우 뛰어 나다. 건축양식은 앞면과 두 옆면을 쌓아 올린 기단부 위에 낮은 건물기단을 갖추고 있고 초석은 자연석으로 되어 있다.모서리 기둥은 배흘림이 있고 나머지는 평기둥으로 되어 있으며 또한, 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창살 무늬를 빼 놓을 수 없다.
대웅보전의 꽃창살 무늬 |
전면 3칸으로 모두 8짝의 문짝은 온통 국화와 연꽃으로 수 놓아져 있으며 이 꽃창살무늬는 그 소박하고 정교한 아름다움이, 그대로 경건한 신앙을 자아내게 한다. 오색단청이 아니라 나무빛깔과, 나무결을 그대로, 드러나게 만든 소지 (素地) 단청은 아름다움의 극치로 평가 받고 있으며, 꽃창살의 사방연속 무늬는 우리나라 장식문양 중 에서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것으로, 창살 하나에까지 라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담아 내고자 했던 옛 사람들의 높은 예술성과 장인정신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잇을 것이다. 대웅보전 안에는 석가 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후불탱화, 지장탱화 및 후불벽화로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 이라 한다. 본당 천장에는 큰 들보를 사이에 두고, 열 개의 악기가 천음(天音)을 연주하는데 나팔모양도 있고 비파모양, 피리모양등 여러 악기가 대웅보전의 내경과 조화를 이루며 장엄한 심포니를 합주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천장에 남쪽,공포 한군데에 목침 한 개만하게 빈곳이 있는데,이는 법당을 지을 때 시종이 목침을 숨겨 버렸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신비스럽게 깃들어 있고 동쪽 단청에도 유독 한 곳에는 단청칠이 없는데 단청을 맡은 화공이 일을 마칠 때까지 법당안을 들여다 보지 못하게 했는데 호기심 낳은, 상좌 하나가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그 화공이 피를 토하며 새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는 전설은 탐방객으로 하여금 신비감을 더욱 안겨준다. 또 대웅전에 오르기 전에 만나게 되는 봉래루(蓬萊樓) 역시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높고 낮고 아무렇게나 생긴 자연석을 누각에서 윗뜰로 드나들 수 있게 설계되어 있는 것도 뭇 사란에게 경탄과 신선한 감동을 주며 봉래루는 잦배지붕에 앞면5칸, 옆면 3칸인 2층누각으로 건축되어 있고 안에는 "내소사만세루중건기"1821,"변산내소사사자암중창기 "1856,"변산내소사영세불망기"1875,등현판 여러개가 걸려있는게 특색이다.대웅보전 옆에 우아하게 자리잡고 있는 "설선당 및 요사" 는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설선당(設禪堂)은 맞배지붕에 "井자" 모양의 건축물인데 1640년(인조18)에 청영(淸映)대사가 승려들의 수학도장을 목적으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고려동종]
보물 제 227호 고려동종 |
종의 어깨에는 어깨띠를 돌렸는데 어깨띠에는 매우 우아하고 화려한 당초보상화문이 뚜렸하게 새겨져 있으며 또 여의두문(如意頭文)과 유사한 입화형(立花形)장식이 배치되여 있다.
[내소사 경내의 할머니 당산]
이전에는 음력 1월 14일밤에 제수를 차려놓고 부락민과,내소사 스님들이 합동으로,사이좋게 동제(洞祭)를 지냈다고 한다.이런 풍속은 다른 지방에서는 볼수 없는 일로 민간인과 승려와의 유대관계,또는 민간의 토속신앙과 불교와의 융화된 한장면을 볼 수 있어 매우 이채로울 뿐더러 오래 존속하고 싶은, 특색있는 미풍이기도 하다.또 전나무 숲을 지나서 경내에 들어서는 입구의 건물, 천왕문 (天王門)에는 사천왕상 (四天王像)을 봉안하고 있다.사천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外護神)이다.엄숙한 분위기가 감돌기 마련인 경내에 들어가기전에 보는 이로 하여금 깜짝 놀라기도 하고 그러면서 미소를 짓게 하면서 안도감을 주는 믿음의 상징이다.사천왕은 천상계(天上界)의 동서남북 네 곳을 관장한다는 믿는, 고대 인도의 신화적인 관습에서 나온 것이라 하며 그들은 "수미산" 기슭을 따라 올바르게 살아 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들을 바른길로 인도 하기 위한 천황이라고 한다. 천왕상들은 불거져나온 부릅뜬 눈과 잔뜩 치켜올린 눈썹과 크게 벌어진 빨간 입 등 두려움을 주는 얼굴에, 손에는 큼직한 칼등을 들고 있으며 발로는 마귀들을 짓밟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모든 중생들이 이문에 들어설 때 세상의 온갖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안락하고 자유로워지는 부처님의 자비의 뜻에서, 이런 문이 세워졌을 것이다. 능가산의 품에 안기어 늘 아늑하고 편안하며 격조 높은 집안의 중후한 요조 숙녀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내소사는 그 고색 창연한 분위기며 깔끔하고 정갈한 이미지가, 찾아오는 사람들의 신심을 더욱 돋우고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내소사는 서기 633년 (백제무왕34년) 에 혜구두타 (惠丘頭舵)라는 고승(高僧)이 창건하였으며 소래사 (蘇來寺)라 불리우기도 하였고 대소래사와 소소래사의 두 절로 되었던 것이, 대소래사는 불타 없어지고, 지금의 내소사는 소소래사인 작은 절이고 천년을 삭이며, 지금까지 불심을 이어오고 잇는 것이다. 그 후 1633년 (인조11년)에 청민선사(靑旻禪師) 가 중건했고 처음으로 1902년에 관해 (觀海)스님께서 다시 중수(重修)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것이다. 내소사가 지닌 아름다움의 극치는 역시 대웅보전으로 보물 제 29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웅보전으로 오르는 길에는 봉래루와 설선당의 신선한 감동과, 여운을 주는 가람이 있어, 절을 찾는 이에게 마음을 비우도록 가르치고 있다.대웅전의 대웅(大雄)이란 부처님을 가리킨 말로 진리를 깨달아 세상에 널리 펼친 위대한 영웅이란 뜻이다. 대개의 경우 대웅전에는 출입문이 전면과 좌우로 배치되어있다. 전면으로는 조실 (祖室)과 노덕 (老德)스님들이 드나들 게 되어 있고 좌우로는 나이 어린 스님이나 신자들이 드나드는 것이 예절로 되어 있다.그런데 일반 관광객들이 이런 절차를 모르고, 대웅전 문턱에 걸터앉는다거나, 출입을 하는 수가 있는데 대웅전은 단순한 문화적인 유물을 안치한 곳이 아니라 신앙의 엄숙하고 신선한 공간이므로 결례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이런 예절정도는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주불 (主佛) 로 봉안하고 있으며 불단을 건물의 중앙에 설치하여 그 위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넓은 공간의 활용을 억제하면서 불단을 중앙에 설치한것은 고대 인도의 예법으로 한 부처에 대한 예경(禮敬)으로 그를 중심으로 하여 세 번 도는 예법이 있었기 때문이라 하며 부처님을 한 가운데 모셔놓아야 그 둘레를 돌 수 있기에 그렇게 안치시킨 것이다. 한편 "대웅보전"이란 현판을 건 건물은 대웅전의 격을 높인 것이며 중심의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상응 모시며 각 여래불좌우에 제각기 협시불을 봉안하기도 한다.
[설선당과 요사]
1960년대 부안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변산 일주의 수학여행을 하면서 이곳에서 단체로 숙식하여 유적답사의 과정을 밟은 적이 있는데,많은 학생들이 숙박하는데도 아무 불편함이 없었다. 설선당은 건물구조가 특이하여 4면이 모두 다른 요사와 연결되여 4면이 모두 다른 요사와 연결되어 있고 중앙내부에 우물이 있으며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은 승방과 식당, 거대한 아궁이가 있는 부엌으로 배치되어 있고 2층은 마루로서 각종식량을 저장할 수 있도록 공간을 두었으며 각각의 벽면에는 환기창을 만들어 냉장고의 구실까지 할 수 있도록 건축되어 있는 특이한 건축물이다. 다음에 보종각에 안치되어 있는 고려동종은 보물 제227호로 지정되어 있고, 이 종의 몸체에 새겨진명문에 의하면 고려시대인 1222년 (고종9)에 청림사 (靑林寺)에서 주조된 것이었으나, 청림사가 폐사된후 오랫동안 매몰되었다가 1853년 (철종4)에 내소사로 옮겨진 것으로 되어있다.종의 높이는 1.03m, 구경 0.67m, 무게 700근의 고려시대의 특색이 잘 나타나고 있는 장엄하고 미려한 고려동종의 대표작이다
[석탑과 요사]
내소사 석탑 |
몸체에는 4개의 유곽이 잇고 그 안에 각각 9개의 유두를 배치하였다. 당초문의 유곽 아래에는 4개의 당좌가 있어 전체적으로 매우 균형있는 모습이며 유곽과 당좌사이에는 연화대에 앉은 본존상과 두 협시 보살입상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종신의 상부에는 정밀하고사실적인 머리가 용두(龍頭)를 배치하여 정교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암이란"작은 초가,출가 또는 은사가 있는집,초암(草庵),모암(茅庵),봉암(蓬庵) 등 민가에서 떨어진곳에 초목으로 얽은 집"이라고 불교사전에 나와 있다. 암자는 스님들의 과도한 수행 중에 생긴 병의치료,기도의 장소,노승들이 쉬어가며 수도하던곳으로 전해져오고 있으며 지금은 포교와 수도의 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장암은 일주문을 거쳐 전나무 숲길을 들어서면서 오른쪽 옆길로 접어들어 자리하고 있으며, 청련암은 내소사 뒤쪽으로 골짜기를 타고 가파른 산길을 2km쯤 올라가 해발 300m정도의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1907년 당시 줄포에서 살았던 인촌(仁村)김성수와 백관수,송진우가 함께 의형제를 맺으며 풍운의 뜻을 품고 도일하기 전까지 공부를 했던 절이다. 이곳에서 보는 조망이 일품이며 곰소만의 푸른 바다의 절경과 어둠을 뚫고 은은히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는 마치 천공에서나 선계에서 울려오는 음악과도 같으며, (소사모종)의 변산팔경과 어울리어 나그네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