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진마을
1274년(충선왕:1년)10월초에 여,몽(고려와 몽고)의 일본정벌을 위한 동정연합군 3만여명이 900여척의 수송전함으로
일본 규슈의 하카타에 상륙하여 크게 무찔렀으나 이른 바 가미카제라는 태풍을 만나 패퇴하고 돌아왔다는 사실과 관련하여
고려의 견고하고 우수한 전함과 수송선 900여척을 전라도 부안의 변산(邊山)에서 조선하였다는 사실과 그 조선소가
지금의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 구진마을을 중심으로한 지역일 것으로 되어있다
거무진 검모포진영이 있는 마을이란 뜻.
곰소의 동쪽해변 마을이다.
마을의 서편 산등성이에 옛 진영의 관아건물이 들어섰던 자리가 18년전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수 없다.
과거에는 동끝과 서끝이라고 하여 바다를 끼고 긴 마을을 형성하여 주로 풍선을 이용 어업에 종사하여 많은 인구가 있었고
마을 뒤에는 오래전부터 있어온 수호신이라고 할수 있는 당산나무가 있으며
마을 주변에서 고려자기를 생산하여 노량진으로 수송하였다는 내역이 있다.
당초 구진은 검모진이라 하였는데 진이 옮겨 가면서 구진이라고 마을 명칭이 바뀌어 지금까지 그 이름으로 불리워 지고 있다.
그러나 구진은 바닷물이 마을 앞까지 출렁였으며 바다 외에서의 수입은 없었다.
육로는 보안면으로 연결되는 것이 유일한 수단이였다가 다리가 놓아 지면서 진서면에 래왕할수 있는 통로가 이루어 졌다.
6.25 동란 이후에는 전 주민이 헐벗고 굶주렸으며 먹을 식량이 없어 변산의 생키,칙뿌리,들판의독새열매,쌀겨.쑥등으로
어려운 보릿고개를 감당해야만 했다.하지만 바다에만 의지 하였으나 토사유입으로 바다와 완전히 차단되여
도시로 떠나고 지금의 구진을 유지 하고 있다.
지금은 양어장.또는 주변의 관광지 활성화로 다른 면모로 승화 시켜나가고 있다.